'더 퍼스트 슬램덩크' 다시 보는 그들의 경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주인공이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는 기존의 TV애니판이나 만화책에서 특별히 개인적인 드라마가 많이 없었던 송태섭의 이야기에 아쉬움이 남아 이번 극장판을 송태섭의 개인사를 메인으로 잡고 기획했다고 한다. 영화는 송태섭의 형과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며 어떤 언급도 없이 원작의 마지막 경기인 산왕전과 함께 교차되며 흘러간다. 어린 시절 송태섭은 아버지를 잃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농구의 유망주였던 형 준섭마저 사고로 잃게 되고 가족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자리 잡게 된다.
영화는 산왕전을 중심으로 송태섭의 이야기와 멤버들간의 이야기를 회상으로 보여 주면서 팬들이 알고 있던 산왕전에다 또 다른 서사를 쌓아 나간다. 송태섭의 이야기가 메인 축이 되면서 원작의 대사 하나가 소중한 팬들에겐 '왜 이 부분은 나오지 않지?' 하며 불만이 생길 수 있지만 인물들과 대사를 줄인 대신 경기가 꽤 긴장감 있게 빠른 템포로 흘러가고 중간중간 쌓인 서사들이 영화 말미에 폭발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이 작품은 작가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연출 포인트를 느낄 수 있는데 거기에 더해 작가는 '더 퍼스트'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설명하며 극장판 1, 2의 시리즈 개념의 더 퍼스트가 아닌, 기존 원작에서 보여 주지 못한 것들을 보여 주겠다는 의미로 새로운 시점에서 슬램덩크를 그리고 싶었다고 언급한다.
세련된 작화에 깃든 슬램덩크의 새로움
천천히 서사를 쌓아나가다 긴장감 있는 산왕전과의 경기 장면과 더불어 마지막에 폭발하는 연출과 더불어 2D와 3D의 기술이 합쳐진 작화는 원작 슬램덩크의 향수와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져 세련된 인상을 심어 준다. 운동 경기 특성상 물론 애니메이션이란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하는 약간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런 기술력을 토대로 하지 않았다면 영화가 이 정도로 입소문을 타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화, 연출과 더불어 경기가 끝나기 마지막 2분 전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결말을 다 알고 보는 팬들에게도 새로운 긴장감을 주며 극장에서 보아야 그 진가가 드러날 만큼 고요하고도 짜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태섭 군 여기는 자네의 무대입니다'라고 말하는 안 감독의 대사처럼 더 퍼스트 슬램덩크 속 산왕전의 무대는 송태섭이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구선수로서 키도 작고 몸집도 그리 크지 않은 어쩌면 조건적으로 가장 최악인 송태섭은 대신 누구보다 빠른 스피드와 경기의 전체적인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 그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안 감독의 말은 엄청난 힘이 되지 않았을까. 죽은 형을 떠올리게 한다며 농구하는 것을 반대한 어머니와의 갈등도, 형이 배를 타고 떠났을 때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송태섭은 오히려 농구를 하며 치유하고 극복해 갔는지도 모른다.
변함없는 그들의 열정과 정신
1998년 SBS에서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방영했는데 당시 최고 시청률이 36%로 전체 만화영화 시청률 중 탑 3에 올랐다. 지금의 3040 세대라면 슬램덩크를 한 번도 못 봤을지언정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건데 당시에 애니메이션이든 만화책이든 봤던 팬들이라면 2023년에 개봉한 극장판 슬램덩크가 상당히 반가웠을 것이다. 극장판으로 새롭게 만난 슬램덩크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송태섭이란 인물의 서사와 송태섭의 시각에서 북산 멤버들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선했고 산왕전에서 경기 마지막 몇 초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뛰는 북산 팀의 모습에 여전히 90년대의 슬램덩크를 느낄 수 있었다.
슬램덩크가 처음 나온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 뛰고 감명을 주는 건 나는 세월이 흘러 어린이에서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농구 코트에서 살아 숨 쉬고 열정을 다해 뛰며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북산 팀 5인방의 정신력과 끈기는 슬램덩크의 모든 명대사에서 알 수 있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울림을 준다. 뒤처지는 순간에도 경기 흐름은 우리가 바꾸는 거라며 팀원을 다독이고 사기를 올리는 강백호의 모습은 슬램덩크라는 작품의 전체 주제를 관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강백호라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북산 팀을 강하게 만들었고 산왕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정신과 열정을 알기에 팬들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고 감동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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