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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좀비보다 더 추악하고 무서운 것

by 해랑09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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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때에는 자기 자신이 제일 우선이야"

 

웰메이드 한국형 좀비 영화, 그 포문을 열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즈음,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사람들을 비추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석우는 금융업에 종사하며 일반 개미 투자자들을 속이는 비리도 저지르지만 딸 수안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다른 아빠들 못지않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딸의 말에 함께 부산행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한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한 여자가 어딘가 불편함을 느껴하며 탑승하는데 이 여자가 영화에서 부산행 열차에 첫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로 열차는 점점 좀비 떼로 물들게 된다.  

 

뛰어내리지도, 나갈 수도 없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혼비백산하여 사람들은 도망치지만, 열차 객실 문을 닫으면 좀비들이 문을 열 수 없고 시야에 가려지면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사람들은 부산행으로 가기로 선택한다. 바깥 상황도 비상 사태라는 걸 확인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기차 안을 떠날 수도, 있기에도 모두 무서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좀비가 되거나 점점 미쳐 가거나 양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이 한국형 좀비 영화의 거의 시초 격으로 만든 영화로 국내 천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대흥행을 했으며 이후 많은 좀비 영화, 드라마들이 나오며 K-좀비 열풍을 일으킨 영화이기도 하다. 제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좀비 사투극으로 장르 영화 특성인 오락성과 스릴을 잘 살렸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갈등과 인간 군상을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작품성도 인정받아 많은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열차'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지옥도

'좀비'라는 가상의 재난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열차'라는 폐쇄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은 보는 것만으로도 지옥도를 연상시킨다. 영화 부산행은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각 인물들의 옳고 그름의 도덕적 판단보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본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음에 초점을 둔다.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게 맞는지, 안에 있어야 맞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열차라는 공간도 어느새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극단에 치닫게 되면, 진짜 두려워할 것은 '좀비'라는 괴물이 아니라 의심과 이기심으로 무장한 인간들의 '두려움'임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악랄함과 의심, 이기심 속에 질려 버려 차라리 다 같이 죽자는 분노까지 표출하게 되는 그 '두려움' 자체가 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더욱 비극적이고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자포자기하고 죽겠다고 막 나가는 인물에 대항하여 어떻게든 살겠다고, 어떻게든 살아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싸워야 하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딸 수안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아빠 석우나 배 속의 아이가 있는 임산부 성경과 그의 남편 상화는 아이와 가족을 위해 생을 자포자기할 수 없다. 그런 '생을 다하여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좀비 말고도 정신 놓고 미쳐 버린 사람들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은, 뛰어내리지도 못하는 달리는 좀비열차가 절망이자 지옥도일 수밖에 없다.

 

'선택'의 기로와 인간 본성의 표출

영화는 단순히 좀비 액션 블록버스터를 넘어서 극한의 상황에서의 다양한 인간들의 '선택'에 대해 얘기한다. 열차 안의 모두가 두려움과 싸우고 있지만 누군가는 여기서 행동을 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선택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의 선택이란 각 인물에 따라 극한의 공포 앞에 치닫는 인간적 본능으로 결정되어질결정될 수 있고 그것을 뛰어넘은 사랑, '인간애'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그 선택에 '용기'마저 요구되기도 한다.

 

용석의 말처럼 여기 있는 누구도 가족의 생사도 확인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 목숨을 담보로 타자를 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달려오는 좀비 떼를 보며 넘어진 할머니를 일으켜 함께 도망치는 것도, 1초가 긴박한 상황 속 열차 출입구를 두드리는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도 생사에 갈림길에 놓인 '선택'의 순간들이다. 결국 모두가 다 죽고 살아남은 성경과 수안이 좀비 시체가 널려 있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는 행동 역시 웬만한 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문제 앞에서 남들을 의심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이기심을 피우는 용석이 굉장한 빌런이자, 혐오스러운 이가 될 수도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나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모두가 다 상화처럼 희생정신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좀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영화의 초반부 자신과 딸 수안만 빠져나오려 했던 석우가 어쩌면 현실에 가까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런 비극적 상황 속에서 영화의 결말을 보면 그럼에도 해피엔딩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조금은 신파적이라 할지라도, 부산행 열차 속 상황이(좀비라는 특수한 설정이 다를 뿐) 현실 경쟁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현실에도 남을 밟고 나 자신만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을 도와 같이 잘 살겠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상화와 성경, 석우 같은 인물이 있기에 누군가는 끝까지 살아남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질문을 던지며 끝맺는다. 당신이라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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