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을 기억해."
어른을 위한 비판과 위로가 섞인 명작 동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비록 개봉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2015년에 재개봉을 할 만큼 많은 이들에게 명작으로 기억된 영화입니다.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본 저에게도 당시 굉장히 충격이면서도 인상적이었고 DVD를 사서 여러 번 돌려볼 만큼 인생작품이기도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친구 딸인 치아키를 보고 영감을 받아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자고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많은 감명과 감동을 남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일반적인 잘 만든 영화만큼이나 깊이가 있고 작품성이 탁월합니다.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LA와 뉴욕 비평가 협회상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상 등을 받았습니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흘러서 다시 봐도 또 새로운 여운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역시도 어렸을 때 봤을 때와 어른이 된 이후 봤을 때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탐욕과 본능적 욕구에만 탐닉하던 인간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브리 작품에는 거의 매번 등장하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각심, '나'란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영화 전반 내내 많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게 하고 공감하게 합니다.
제목과 두 주인공을 통해 보는 이름의 의미
'치히로'는 부모님과 함께 시골로 이사를 가던 중, 낯선 터널을 발견하고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주인이 없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호화로운 음식들이 차려져 있자, 두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치히로와 달리 엄마, 아빠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멋대로 가게 안의 음식을 마구 먹습니다. 엄마, 아빠는 돼지가 되어 버리고 어둠이 내린 낯선 곳에서 치히로는 두려움에 떨다 '하쿠'라는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하쿠의 도움으로 신들의 세계에서 온천장에서 일하게 된 치히로는 원래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이름을 지닌 채, 엄마 아빠를 구하고 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갑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해석하는 글들은 많은데 제 나름대로의 해석은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서 이름을 빼앗겨 센으로 살아갈 때의 치히로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과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센이라는 이름을 잊고 다시 치히로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의 센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것을 교차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치히로가 터널을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온 장면에서 치히로의 머리에 제니바에게 받은 머리끈이 반짝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치히로가 터널 저 편에서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 일들이 환상이나 꿈은 아니었다는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만난 것은 잊지 못하는 거다. 기억해 내지 못할 뿐이지.'라는 제니바의 대사처럼 센이라는 이름으로 온천장에서 지낼 때의 기억이 치히로의 머릿속에 지워졌다고 해도 그 일이 없었던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센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것도, 치히로의 원래 이름으로 사는 것도 모두 같은 정체성의 하나이고 모두 같은 '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쿠 역시도 본래의 이름을 잊은 채 온천장의 유바바 밑에서 살아왔습니다. 치히로 덕분에 나중에야 원래 이름을 찾았고 영화 속에서도 둘은 이름을 잊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을 대표하고 말합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지 않고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혼란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역시도 나라는 사람을 잊지 않아야 분명하게 정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양한 해석을 보는 재미, 나만의 해석은
오랜만에 다시 복기해 보는 이 영화는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흐뭇해지는 작품입니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이 영화는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데 제목의 '행방불명'이라는 번역이 원제의 뜻(신이 데려갔다)과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으며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두고 치히로가 탐욕스러운 부모에 의해 매춘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라고 해석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춘에 대한 부분은 미야자키 감독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더불어 이 영화를 두고 성장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미야자키 감독은 이 역시도 아니라고 말하며 어린이는 여러 체험을 통해 성장하지만 그 본질(순수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터널을 빠져나온 후 치히로가 다시 엄마의 팔에 꼭 붙으며 무서워하는 장면을 보면 본질적인 아이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히로가 현실로 돌아온 후, 신들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잊었는지 기억에 남아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백퍼센트는 아니어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에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쿠 역시도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는 다양한 해석을 남기는데 이 작품은 언제 다시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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