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른보다도 더 잔인한 아이들의 세계
요즘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슈와 논란을 낳고 있는 왕따와 학교 폭력 문제. 영화 '우리들'에서도 초등학생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왕따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마냥 흐뭇하게만 볼 수 없다. 영화의 시작은 아이들이 피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왕따인 주인공 '선'이는 가위바위보로 팀원을 고르는 방식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으며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 골칫덩이 존재로 그려진다. 선이는 예전에 친했던 반에서의 인싸인 '보라'와 다시 친해져 보려고 하지만 선이만 따돌리는 친구들의 행동만 다시 확인할 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선이는 전학 온 지아를 만나게 되고 여름방학 동안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개학을 한 후, 지아는 선이에게 묘하게 벽을 치며 거리를 두려 한다.
영화 속에서 '피구'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피구라는 스포츠가 생각보다 잔인한 게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 역시도 초등학생 때 체육시간에 많이 했던 게임이었는데 어렴풋이 생각해 보면 그때도 아이들끼리 싫어하는 친구들을 피구공으로 일부러 노려서 맞추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공을 다루는 스포츠는 보통 공을 어딘가에 넣거나 하는 식으로 득점해서 다득점한 팀이 이기는 방식인데 반해, 피구는 플레이어, 즉 어떤 선 안에 들어가 있는 선수들을 직접적으로 공을 맞춰서 모두 아웃시켜야 이기는 방식이다. 선 바깥에 4개의 면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선 안의 플레이어들은 공을 가슴으로 한 번에 받는 방식이 아니면 공격 기회가 거의 없고 도망치듯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이 잔혹하기까지 하다. 영화 속 '왕따'라는 소재를 다루는 측면에서 표현하기에 가장 잘 맞는 게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노골적으로 왕따를 시키고 무리에서 배제시키고 다 같이 합세해서 공격한다는 점에서 피구는 왕따를 겪는 초등학생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게임이고 그것을 보는 어른에게도 트라우마를 일으킬 만큼 안타깝고 답답한 장면이다.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자연스러움과 생생함
우리들 영화는 윤가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인데 보다 보면 마치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생생함이 느껴진다. 배우들은 거의 아이들이 다수이며 아역들은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들을 섭외해 정해진 대본 없이 상황만 설명해 주고 연습 후 자연스럽게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카메라 역시 2대만 가지고 동선을 정하지 않고 아이들을 상황 속에 놓으며 자유롭게 풀어주며 촬영했다. 덕분에 아역들은 대본을 암기하고 대사를 친다는 느낌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듯이 대사를 치는 것이 느껴졌고 감정이나 생각들도 관객에게 조금 더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어리다고 늘 순수한 것은 아니며 늘 쉬운 것도 아니다
여름방학 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잘 놀던 선이와 지아의 관계에 묘하게 균열이 인다. 지아는 선이에게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속얘기를 터 놓지만 선이는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집안이어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좋다. 선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지아는 질투심과 열등감에 선이를 멀리하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선이의 집에 대해 은근히 비하하기도 한다. 지아는 학교에서 선이를 모른 척하며 보라와 친해지는데 보라와도 어느 순간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다. 언제나 반에서 성적이 늘 1등을 차지했던 보라였는데 1등을 지아가 새롭게 차지하면서 친구들 사이의 인기도 지아에게로 기울였던 것이다. 열등감과 질투심에 혼자 울분을 삭이던 보라에게 선이는 위로해 주며 지아에 관한 비밀을 얘기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지아와 선이는 크게 싸우고 만다.
초등학생이면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잘 어울릴 것 같지만, 그 시기만의 순수함이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쩌면 어른의 세계보다 더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버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질투와 열등감이 있고 누구에게든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도 있다. 그 미묘한 감정들을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자연스럽게 담아낸 영화를 보다 보면 어린 시절의 감정들이 떠올라 공감이 되기도 아프기도 했다.
한편으론 선이의 동생 '윤'이 하는 말처럼 '연호가 때리고, 내가 때리고, 그럼 우린 언제 놀아?'라는 대사는 그 복잡 미묘한 감정싸움으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에 돌멩이를 던지듯 일침을 가한다. 어린이들이라고 관계가 늘 쉬운 것은 아니지만, 늘 복잡할 것도 없다. 그렇게 서로를 경계하고 상처를 주면서도 오늘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의 관계. 마지막 피구 장면에서 선이가 아이들에게 구박을 당하는 지아의 편을 들어주는 장면을 보면, 어제는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오늘은 다시 심플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어른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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