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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열정인가 광기인가 천재인가 싸이코인가

by 해랑09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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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야"

 

미친 영화, 미친 캐릭터

 

위플래쉬(whiplash)는 영화 제목부터 뜻을 풀이하면 '채찍질'이라는 의미다. 음악 영화에 뭔가 어울리지 않은 심상치 않은 제목부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제대로 몰아붙이고 극단으로 치닫는다. 밴드 드럼 지망생인 앤드류와 최고 음악학교의 지휘자 겸 교수인 플래처 투 탑으로 이끌어가는 영화임에도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말 그대로 채찍을 맞으며 달리는 말처럼 휘몰아친다.

뉴욕 최고의 명문 음악학교 셰이퍼에 들어가게 된 앤드류는 그곳에서 플래처 교수를 만나고 음악을 하며 그동안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엔 우리가 기존에 알던 '선생과 제자' 간의 애틋한 감정은 없다. 학생인 앤드류와 선생인 플래처는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독을 내뿜는 철저한 적수로서의 역할도 한다.

'틀리지 않았다는 걸 모르는 것도 죄지.'라고 말하는 플래처에게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으며 음악적 완성도 앞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는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제자들에게 애정 같은 것도 있을 리 없다. 절대음감을 가진 플래처 교수는 단 1분 1초의 지각이나 박자가 틀리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재능을 보이는 앤드류와 같은 제자들은 당근이 아닌 채찍을 휘두르며 항상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실수라도 하는 날엔 그 자리에서 멤버 교체가 되거나 밴드에서 빼버리기 일쑤고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심각한 완벽주의자에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그의 폭언과 폭행에도 학생들은 그에게 함부로 대들지 못하고 불쌍하리만치 당할 수밖에 없다. 그의 한마디면 뉴욕 최고의 무대에 서거나 다시는 음악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업계에서 플래처 교수의 영향력은 강하다.

영화의 중반부 너머를 지나면 어쩌면 싸이코라고 느껴지는 플래처 교수만큼이나 앤드류 역시도 미쳐 간다고 느껴진다. 플래처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손이 드럼스틱으로 물집이 터지고 피가 나도 미친 듯이 연습을 이어 나간다.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열정을 넘어선 광기처럼도 보이는 그의 집념과 노력은 그저 재능이 출중해서 플래처 교수의 눈에 띄었다고는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엄청나다.

소재는 재즈, 실상은 스릴러?

주인공 앤드류는 재즈 드러머 지망생으로 음악 영화이지만 보고 나면 단순히 음악 영화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마치 쫓고 쫓기는 한 편의 스릴러를 보고 나온 듯 영화가 끝날 때쯤엔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영화의 주제나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음악 영화를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니며 플래처와 앤드류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 통제와 억압이 진짜 보여주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극중 연주되는 음악들도 평소 들었던 잔잔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재즈가 아닌,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을 듣는 것처럼 사납고 불 같으며 폭발적이다. 

영화에서 주로 클로즈업이나 근접샷이 많은데 그 방식이 캐릭터들의 강한 표정이나 광기가 넘치는 모습을 위압적으로, 압도적으로 보여주기에 적절했다. 마치 관객 역시 플래처에게 혼쭐이 나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화면 가득 위압적인 플래처를 느낄 수 있고 후반부에 다다르면 앤드류처럼 반쯤 정신이 나가버릴 듯 어느새 극에 빨려들어간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체험이 비단 자극적으로 특수효과가 넘치는 액션 영화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적인 영화임에도 <위플래쉬>는 간접적으로나마 앤드류의 상황을 체험해 볼 수 있을 만큼 연출력이 미친 영화이다. 플래처에게 정신적 지배를 당하는 앤드류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플래처가 그 어떤 잔인한 스릴러의 살인범보다도 희대의 악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러닝타임 내내 미친 듯한 두 캐릭터의 줄다리기에 끌려가다 보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깊은 한숨이 나올 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이 작품은 감독 다미엔 차젤레가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영화 자체도 놀라운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로도 앤드류와 플래처의 행동이 극단적이고 과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최고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까지 도달할 정도의 경험이 한 번쯤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앤드류와 플래처를 보다 보면 마치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와 한계를 시험하려는 자의 대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찰리 파커'가 되기 위해 피를 흘리면서도 드럼을 치는 앤드류를 보면 정상과 비정상이 어디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소름이 끼친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이끌어갈 스승의 존재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앤드류는 그만한 실력도 노력도, 열정도 갖춘 학생이지만 앤드류를 찰리 파커로 만들 만큼 좋은 스승을 만났는지는 의문이 든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앤드류를 무대에 초대해 놓고 앤드류와는 얘기되지 않은, 전혀 다른 곡을 지휘하는 플래처 교수를 보여주며 그 답을 제시한다. 천재를 이끌기에 플래처와 같은 스승과 그의 지도가 적절한가를 말이다.

분명히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목표를 위해 비이성적인 강압과 어떤 식으로든 폭력으로 그것을 이끈다면 그것은 올바른 '찰리 파커'로 키워내는 적절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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