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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by 해랑09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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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겠어요.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걸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닐 거예요. 진짜가 무엇일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거짓말이 불러온 최악의 하루

햇살 좋은 초여름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는 서촌에서 길을 묻는 한 일본인 남자를 만난다. 은희가 통하지 않는 말 대신 직접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하자 일본인 남자 료헤이는 은희를 따라나선다. 은희 덕에 길을 찾은 료헤이는 은희에게 커피 한 잔 사겠다고 하고 얼떨결에 은희는 그와 함께 커피까지 마시게 된다.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거짓말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답하는 료헤이에게 호기심이 생긴 은희는 어디냐는 남자친구 현오의 문자에 길이 막혀서 늦을 것 같다는 거짓말을 한다.

 

료헤이와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결국 은희는 약속대로 남자친구 현오를 만나러 남산에 간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때 은희와 잠깐 만난 적이 있던 남자 운철을 만나게 되고 묘하게 자신에게 집착하는 운철을 보며 은희는 거짓말을 하며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은희는 운철을 떼어내려 하지만 자꾸만 자신을 쫓아오는 운철과 같이 있다 우연히 현오에게 그 모습을 들키게 되고 뜻하지 않게 삼자대면을 하면서 은희는 바라지 않았던 '최악의 하루'를 겪게 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가 있다

은희는 남자친구 현오에게는 오늘 처음 만난 남자 료헤이에 대해서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으면서 저녁에 남산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 료헤이를 보고는 정확히 이름을 말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은희는 크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보고 있으면 그녀의 말이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건 이 영화 속 은희만이 아닌 은희 주변의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이 흥미롭다.

 

매번 은희의 말과 행동이 해프다는 식으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친구 현호는 은희와 장난을 치다가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불러 실망한 은희에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또한 운철 역시 다시 만난 은희에게 자신은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다며 전처와 재결합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은희를 보며 '내 맘 알죠?'라며 은근히 계속 만남을 이어가자는 행동을 한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두 남자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오히려 은희의 거짓말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지쳐버린 은희는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게 돼 버린 것은 아닐까.

 

모두가 가짜인 것은 아니야

오늘 하루 동안 은희는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선배 앞에서의 은희는 선배의 꼰대질 앞에서도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바람기 많은 남자친구 앞에서는 연애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며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여자친구의 모습이었다. 또한 운철 앞에서는 차분하며 소신 있게 발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오늘 처음 만난 료헤이 앞에서는 호기심 많은 젊은 예술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모든 사람들에게 일괄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만나는 상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거나 가능성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기보다는 조금은 원만하게 넘기고자, 또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싫은 그것이 어쩌면 은희의 가장 솔직한 내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소소한 거짓말들이 나온 은희의 말과 행동은 거짓말이라고 비난할 여지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모두 진심이 아니다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모두 갖겠다고 매번 거짓말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렇게 하다 남산에서의 하루가 최악의 하루가 돼 버린 은희처럼 곤경이 밀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 료헤이와 함께 남산을 산책하며 '요즘 살고 있는 게 연극이에요'라고 말하는 은희처럼 나 역시도 하루하루 가면을 쓰면서, 가끔은 속마음과 다른 거짓말을 하면서 살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회생활, 대부분의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면과 어느 정도의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료헤이가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느 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최악의 하루와는 반대의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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